알비온 란트그라프 리뷰

알비온사의 진검 제품 중 하나인 란트그라프(Landgraf: 영방백)는 15세기 독일의 장검 유물들의 디자인을 토대로 제작된 검으로 육각형 단면의 칼날이 특징입니다. 이 칼을 받아본 지 꽤 되었으나 소개를 위해 한 번 올려봅니다.

상세한 제품 카탈로그는 여기로
http://www.albion-swords.com/swords/albion/nextgen/sword-medieval-landgraf-xvii.htm


한웨이 사이드소드와의 비교. 가운데 놓은 30cm 자를 통해 대략적인 길이를 가늠하실 수 있습니다.



전반적으로 등줄기가 튼실한 편이라 칼날의 폭이 넓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상당한 안정감을 줍니다. 별달리 내구도를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사이드소드와의 비교. 위쪽이 란트그라프입니다. 칼날의 폭 자체는 큰 차이가 없지만 두툼한 칼등이 칼날 끝까지 그대로 이어지기 때문에 보다 묵직한 느낌을 줍니다. 물체를 찌를 때 사이드소드와는 감각이 좀 다를 것 같습니다. 


손잡이 부분의 퀄리티는 만족할 만한 수준입니다. 크로스가드의 경우 각이 져서 맨손으로 사용할 때 약간 껄끄러운 편입니다만 영 못쓸 정도는 아닙니다. 


간단한 평가 

아직 베기에 사용해보진 않았기에 내구도에 대해서는 아직 말씀드릴 만한 정보가 없습니다만 그밖의 다른 요소들은 전체적으로 만족스러웠습니다. 보통 검이란 무기는 파괴력과 조작감 중 어느 한 쪽에 중점을 두고 디자인되기 마련입니다. 장검 역시 14세기까지의 초기형 장검들이 투박하지만 묵직한 한 방을 자랑한다면 16세기 이후의 장검들은 대체로 조작감과 장식성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란트그라프는 그 사이에서 적절히 균형을 맞췄다고 생각합니다. 굳이 따지자면 세밀한 조작보다는 정직하고 위력적인 공격에 무게를 둔 편이긴 합니다만 제 취향에 맞는 부분이라 가산점을 주고 싶습니다. 쓸데없는 기교를 부리지 않고 장검이란 무기의 기본적인 요소들에 충실하게 만들어졌다고 평가하고 싶습니다. 단점으로는 본디 칼날을 받아내고 물리적 스트레스를 견뎌내야 할 뿌리 부분까지 날이 세워져 있다는 것인데 알비온 진검들이 공통적으로 갖는 고질적인 단점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돈 값을 하는 좋은 칼이라는 점은 분명합니다.  

공방론

방어의 본질은 따라감에 있다. 공격은 양이고 방어는 음, 강요하고 몰아세우는 것은 공격이고 따라가고 맞춰주는 것은 방어이다. 공격과 방어가 표리일체라고 해도 실제 싸움에서 적용하고자 하면 둘의 성질을 명확히 구분하여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므로...

1. 공격과 방어는 동작상으로는 거의 구분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마음가짐이다. 내가 공격을 시도하는데 상대의 방어동작을 신경쓰면 그것은 방어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공격을 하는 것이다. 방어하는 사람이 상대의 공격을 예측해 미리 움직이면 이 또한 공격의 마음으로 방어를 행하는 것이다. 능숙한 사람은 이러한 차이를 스스로 알아 원하는 대로 이용하지만 미숙한 사람은 되는 대로 섞어쓴다. 그래서 공격을 하고도 상대의 움직임을 따라 들어가 도리어 늦어 버리거나 방어를 한다면서 먼저 움직여 빈틈을 내어주게 된다.

2. 그러므로 공격이란 나를 우위에 두는 것이고 방어란 상대를 우위에 두는 것이다. 아이키도의 합기란 방어의 마음가짐을 극한까지 밀어붙인 결과 나온 사상이다. 상대를 따라가고 맞춰주어 어긋남이 없도록 한다. 독일 검술전통에서 이러한 방어의 논리가 등장하는 것은 오로지 선공이 실패한 다음이다. 그래서 포어 운트 나흐(Vor und Nach)라 부른다. 방어란 따라가는 것이다. 그런데 독일 검술에서는 남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일단 나를 따라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가르치는 것이 차이점이라고 할 수 있다.

3. 그러므로 절대적인 방어란 존재할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하나의 자세, 동작으로서의 방어는 결코 완전하지 않다. 하지만 관념으로서의 방어는 완벽하다. 왜냐하면 방어란 상대를 먼저 살피고 상대의 행동에 대응하는 것이기에 그에 맞추기만 하면 그만인 것이기 때문이다. 가위바위보에서 상대가 빠르게 내면 무조건 이쪽이 유리한 것과 같은 것이다. 반대로 공격의 논리는 현실론이다. 모든 공격에 방어법이 있다는 것은 쉽게 이해될 수 있다. 하지만 한 번의 공격이 막히면 다른 곳을 쳐서 맞을 때까지 치는 것이다. 공격이 방어에 승리한다는 것은 곧 현실이 관념에 승리한다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공격의 논리에서는 이 공격이 완벽한가, 절대적인가를 따질 필요가 없다. 단지 내가 계속 때릴 수 있는가를 신경쓰면 된다.

4. 그렇다면 어떻게 만일 방어에서 공격으로 전환하고자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공격의 목표는 단절에 있음을 알아야 한다. 공격의 목표는 단절과 고립에 있다. 상대를 무력화시키는 것이 존재의의이고 이것이 만족되는 순간 연속되는 움직임으로서의 공격은 소멸한다. 이 공세종말점을 노리는, 혹은 만들어내는 것이 반격의 시작이다. 공격의 중간과정을 노리는 것은 의미가 없다. 그것은 언제든 바뀔 수 있고 잡아낼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가장 깊고 치명적인 공격을 노려야만 반격은 비로소 성공한다. 얕은 공격은 무시하면 그만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얕은 공격에는 얕게, 깊은 공격에는 깊게 따라가야 한다. 얕은 물에 깊게 뛰어들면 머리가 깨지고 깊은 물에 얕게 뛰어들면 떠내려간다. 따라감이란 상대의 움직임에 알맞는 대응을 하는 것이다. 공격에서 방어로 전환하는 것은 쉽다. 하지만 방어에서 공격하는 것은 어렵다.

5. 상대의 버릇에 익숙해진다는 것은 상대에게 따라간다는 뜻이다. 상대를 마치 처음 만난 초보 대하듯 일단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무작정 해야 상대의 버릇에 구애되지 않게 된다. 동문 수련자들끼리 대련을 하게 되면 매너리즘에 빠지게 된다. 즉 상대에게 길들여지는 것이다. 그때엔 이 충고를 떠올려라.

6. 공격은 공격대로 하면서 상대의 안전을 보장하고자 한다면 두 가지 조건을 염두에 두어라. 첫째, 내 공격을 스스로 정확하게 인지하고 있을 것, 둘째, 상대와 최대한 많은 접촉지점을 둘 것. 살의 없이 치명적인 부상을 일으키는 공격들은 대체로 위의 두 조건을 지키지 않은 상태에서 이루어진 것들이었다.

7. 마지막으로 다시 말하니, 공격과 방어는 하나이다. 잘 알아서 행하면 기예에 배반 당하지 않으리라.

기술철학의 관점에서 본 무술


 무술은 단순한 몸짓의 모음이 아니다. 그것은 이미 내적 정합성을 갖추고 있으며 동시에 구체적인 목적성을 가진 하나의 기술체계이다. 비록 전통적으로 무예(武藝)라는 표현을 사용했다고 할지라도 오늘날의 우리는 무술(武術)이라는 낱말 안에서 이미 그것이 하나의 기술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는 셈이다. 따라서 무술 역시 거시적인 발달과 전수에 있어서 다른 기술들과 동일한 맥락을 지닌다고 가정할 수 있다. 

  현실의 기술은 이론과 실제의 복합적인 산물이다. 이론은 실제에 의해 검증받아야 하고 실제는 이론의 뒷받침이 마련되어야만 한다. 이론과 실제는 서로 다른 영역을 담당하고 있기 때문에 서로를 보완하고 비평하는 것이 가능하다. 일단 이론과 실제라는 두 요소의 특성을 살펴보자.

1. 이론은 통제된 환경을 상정하는 반면 실제는 현실의 혼돈에 맞서는 것을 목표로 한다
2. 이론은 그것이 정합성을 지니고 성립되느냐를, 실제는 그것이 현실에서 구현될 수 있느냐를 따진다
3. 이론은 정밀한 설명을 추구하는 실제는 수단의 단순함을 지향한다 
4. 이론은 문제해결의 과정이 질적으로 훌륭한가를 따지는 반면 실제는 현실 속에서 거둔 결과가 얼마나 훌륭한지를 따진다
5. 이론은 모든 변수들을 검토하지만 실제는 그것을 과감하게 생략한다
6. 이론은 그 자체로서 스스로 존재이유를 갖지만 실제는 특정한 현실의 목적을 성취하기 위한 도구적 가치를 지닌다

이 두 가지의 특성은 다음과 같이 상호작용한다.

1. 이론을 통해 실제에서 간과되기 쉬운 장기적이고 중립적인 시야를 제공한다
2. 실제가 어떻게든 해냈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할 때 이론은 그것이 "어떻게", "왜" 성립되었는지 묻는다
3. 이론의 정밀성은 실제에서 수행할 행동의 오차범위를 줄여줌으로써 하지 않아도 될 실수를 방지한다
4. 실제가 당장의 성취에 만족할 때 이론은 더욱 나은 방법을 추구하고 검토한다
5. 이론의 검토와 실제의 수행은 끊임없는 되먹임을 거듭하며 기술의 수준을 향상시킨다

  마지막 조항의 경우 목적론적인 측면에서 충돌하는 경향이 있지만 둘 중 무엇이 중요한가에 대해 여기에서 논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아무튼 이론과 실제의 상호작용이 기술의 향상에 도움이 되는 것은 분명하기 때문에 훌륭한 실천가는 동시에 훌륭한 이론가가 되어야만 한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꼭 훌륭한 실천가가 훌륭한 이론가인 것은 아니다. 그 까닭은 다음과 같다. 이론은 언제나 실제에 대한 비판과 대안을 제시하려 하기 때문에 실제가 언제나 이론의 도움을 고대하는 것은 아니다. 이론은 언제나 실험적이고 전위적인 반면 실제는 안정을 추구하고 익숙한 길에서 벗어나지 않을 것을 요구한다. 그리고 현실 속에서 이러한 실제의 특성은 필요한 것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익숙하고 검증된 설계와 건축방법만으로 집을 집는다면 건물의 안정성은 보장된다. 그러나 만일 더욱 크고 안락하지만 검증되지 않은 방식으로 집을 짓는다고 한다면 그 시도가 실패로 돌아갔을 때 치뤄야 할 대가는 엄청나다. 이 때문에 대부분의 기술들은 혁신보다는 안정을 추구한다. 특히 인간의 생명과 직결되어 있는 기술일수록 실험의 실패로 지불해야 할 대가는 더욱 용납되기 어렵다. 

  무술의 본질은 투쟁이고 자기방어이다. 잘못된 무술은 사용자의 생명을 앗아갈 수도 있다. 이 때문에 무술은 매우 보수적인 성질을 지니고 있다. 독일 장검술의 개조인 요한 리히테나우어의 제자 한코 되브링어는 무술이 수백 년 전부터 존재하였고 그 기예는 오로지 한 가지만이 존재한다고 주장하였다. 그 이후로도 200년 동안 리히테나우어의 무술체계는 거의 변동이 없이 전수되어 왔다. 그리고 되브링어는 스스로 새로운 기술들을 발명하고 그에 따라 싸운다고 주장하는 자들을 '송장사범'이라고 멸시하였는데 그릇된 기술로 제자들을 죽음으로 이끄는 자들이라는 뜻이었다. 검증되지 않은 새로운 기술은 언제나 위험성을 안고 있다. 특히 그 대가가 목숨일 경우에 실패는 새로운 도약을 위한 발판이 될 수 없다. 16세기에 사회환경의 변화가 있을 때까지 독일에서는 무술 기술의 변화가 거의 일어나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일본에서도 전국시대에 확립된 무술들은 에도 중기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큰 틀에서 연속성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기술은 결코 불변하지 않는다. 기술의 행위와 전수의 주체가 생명체인 인간이기 때문에 기술은 언제나 시간이 지나면서 변형되고 망각된다. 한 사람이 온 우주의 진리를 깨달았다고 할 지라도 그는 그것을 모두 전수하지 못하며 그의 죽음과 함께 깨달음은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인류 역시 이 사실을 매우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다양한 교육방식을 고안하여 기술을 최대한 온전하게 전수하고자 했다. 하지만 단순히 온전하게 지키려고 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할 때가 있다. 그리고 때로는 오히려 그 지키려는 노력이 과거의 전통에 대한 왜곡을 인지하지 못하게 만든다. 만약 날마다 조금씩 기둥이 기우는 집 안에서 산다면 그 변화를 쉽게 알아차리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변함없는 오래된 집 안에 살고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어느 순간 집은 무너지게 될 것이다.  

 이런 문제를 피하기 위해 때로는 옛 기술들이 적절하게 '재발견'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혹은 완전히 새로워 보이는 것들일지라도 기존의 체계에 충분히 포함될 수 있는 것들이라면 받아들여질 수 있어야 한다. 단지 실제를 통한 검증만으로는 이 일을 해내기 어렵다. 앞서 말했듯 실제는 이미 닦여 있는 길을 달릴 때에만 제대로 작동하는 것이기 때문에 새로운 길을 닦는 것은 이론의 불도저로 개척해내야만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가운데서 옛 길의 흔적을 발견해낸다면 그것이야말로 과거의 기술을 온전하게 복원해낼 수 있는 참된 방법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일본의 무술전통에서 중시되는 개념은 바로 수파리(收破離)이다. 불교철학에서 비롯된 이 발전단계에 대해 나는 이전의 글( http://danhaga.egloos.com/5120707 )에서 비판적인 시점으로 다룬 바가 있다. 이번에는 무술의 발전과 전수의 방법론으로서 수파리에 대해 논할 수 있을 것이다. 현실의 요구에 부응하는 실제로서 수는 무술 수련의 기초가 되어야 한다. 이것은 단지 검증된 방법론의 수호만이 아닌 행위자 자신의 수호를 뜻하기도 한다. 아무리 참신하고 뛰어난 이론이라도 죽은 다음에는 소용이 없는 법이다. 파는 두 가지 의미를 지닌다. 먼저 시간의 흐름 속에서 기술의 완전성이 파손되었다는 현실 자체를 가리키며, 또한 그 현실을 인지하고 자신의 관념 속에서 구축한 무술의 내적 정합성을 깨뜨리는 행위를 뜻하기도 한다. 다음으로 리는 그것을 실험하고 검증함으로써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단계이다. 

  이전의 글에도 언급했듯 이 세 가지는 모두 한꺼번에 이루어져야 한다. 훌륭한 무술가는 자신을 지킬 줄 알면서도 자신의 기술을 향상시킬 방법을 찾아낼 수 있어야 한다. 물론 실전에서는 이러한 일들을 해내기가 힘들다. 그러나 수련과 교습은 바로 그런 일들을 하라고 있는 것이다. 최소한의 안전에 신경쓴다면 수련에서는 새로운 것을 시도하다가 실패하더라도 죽지 않는다. 새로운 것을 시도하고 그 과정에서 실수한다는 것은 그가 충분히 지적으로 유능하다는 증거이다. 검증된 것을 반복하는 것이라면 증기기관이 인간보다 훨씬 더 뛰어난 것이다. 무술 수련에 있어 언제나 옛 것을 답습한다기보다는 스스로 새로운 것을 만들고 그것을 옛 것과 비교해 본다는 태도를 견지한다는 것이 중요하다.

  다만 오늘날의 무술에서는 실제의 극한, 즉 실전을 추구하기 어렵다. 반면 이론의 극한을 추구하기엔 더더욱 쉬워지고 있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무술은 사변적이고 추상적인 관념들에 휘둘려 본질을 잃기 쉽다. 과거의 환경과 맥락을 이해하고 그 안에서 이루어졌던 무술의 실재를 규명해내는 작업이 중요성을 갖는 것은 그 때문이다.

   

중단에 대한 고찰

  일본 고류에서 다양한 자세가 존재했음에도 불구하고 현대 검도에서 중단이 압도적인 비율을 보이는 것은 어째서인가? 이를 검도의 스포츠화로 인한 격자부위의 제한에서 원인을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고류에서도 중단이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는 점을 간과할 수는 없다. 중단의 장점으로는 방어적이고 안정적인 자세라는 점이 거론되고는 한다. 그러나 이는 피상적인 이해일 뿐이다. 중단에 대한 이해는 그 도구인 검, 그리고 몸에 대한 이해가 이루어져야만 한다.

  최대한 인체에 편하고 자연스럽게 설계된 다른 자세들과 달리 중단은 인위적으로 인체의 긴장을 유도한다. 뒷발을 세우는 것, 몸을 꼿꼿이 세우는 것, 왼손에 힘을 주는 것, 이 모든 동작들은 흔히 단전이라 일컫는 배꼽 아래와 골반에 힘을 응축시키는 기능을 수행한다. 그러므로 중단은 말하자면 인위적으로 용수철을 누르는 것과 같다. 그렇다면 이러한 긴장은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중단을 취한 검사는 하나의 거대한 쐐기와도 같다. 중단을 취한 일본 검사는 위에서 바라봤을 때 칼끝과 신체가 이등변삼각형, 혹은 뾰족한 부채꼴 모양을 이루게 된다. 이 때 중단의 구조상 신체 속에서 힘을 응축시키고 있으나 칼끝으로 갈 수록 그 힘은 떨어진다. 서양의 개념으로 말하자면 신체 전체가 스트롱이 되고 중단을 취한 칼날이 위크가 되는 것이다. 

  신체가 스트롱을 유지하는 가운데서 짧은 칼 자체가 하나의 위크가 되면서 칼과 몸은 일체를 이룬다. 더욱 정확히 말하자면 몸이 칼의 연장선이 되는 것이다. 이것이 중단과 중심선의 비밀이다. 독일검술에서는 칼을 몸의 연장으로 생각하기에 검은 마치 곤충의 더듬이처럼 민감하게 상대의 강약을 읽어낼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중단은 반대로 신체에 의도적인 긴장을 부여한다. 그리고 단전, 손, 칼끝이 일직선을 이룸으로써 신체를 칼의 연장선에 위치시킨다. 이와 함께 중심선이라는 개념은 손을 츠바로 확실하게 방어함과 동시에 중단으로 유지하는 긴장을 한 방향으로 온전하게 투사하는 역할을 한다. 인체를 거대한 쐐기로 만들어서 상대에게 때려박는 것이 중단의 역할이다. 

  그렇기 때문에 중단은 방어적이면서도 공격적이다. 중단이 구체적으로 작동되는 기제는 다음과 같다. 긴장을 유지한 상태에서 상대에게 접근할 때에는 칼끝이 만나게 된다. 이 부분을 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위크에서의 싸움은 위험하고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검술에서는 상대의 위크를 자신의 스트롱으로 제어하라고 가르친다. 물론 인체는 검보다 단단할 수 없으므로 몸으로 검을 짓눌러서 제어하라는 뜻은 아니다. 여기에서 떠오르는 또하나의 비결이 바로 스떼미이다. 칼끝끼리 만나게 되었을 때 칼을 치려 하지 않고 중심선을 유지하면서 바로 간격을 좁혀들어간다. 

  이 경우 물론 상대는 반격하고자 할 것이다. 그러나 중심선이 지켜지는 한 공격자는 안전하다. 중단에서 크게 베기 위해서는 들어올리고 치는 두 동작이 소요되므로 늦는다. 찌르려고 한다면 크게 파고들어 거리를 주지 않는다. 그렇다면 공격자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상대가 베고자 한다면 들어올리고 베는 두 동작 사이의 간격을 이용하여 반격한다. 찌르고자 하면 중심선을 유지하면 상대의 공격을 궤도에서 자연스럽게 빗겨낸다. 그리고 매우 근접하여 몸과 몸이 맞닿는 거리라면 칼날을 대고 썰거나 유술을 걸면 된다.

  이는 근본적으로 카타나의 짧은 칼날, 그리고 둥근 츠바라는 특성 비롯된 것이다. 츠바는 롱소드의 크로스가드처럼 공격적인 용도로 쓰기에는 부족하지만 정면에서의 방어에 있어서는 매우 탁월한 능력을 자랑한다. 그러나 서양의 컵힐트처럼 완전히 손을 보호해 주는 것은 아니기에 정면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손에 사각이 생기게 된다. 그러므로 중단에서 정면을 바라보는 것은 중요하다. 또한 짧은 칼날은 인체에 적절한 긴장을 부여하고 인체와 칼의 동기화를 더욱 잘 이루어지게 만든다. 칼날이 길어지면 그에 따라 칼날의 무게중심이 신체에서 더욱 멀어지고 칼을 제어하기는 더욱 어려워진다. 거리에서의 유리함을 얻을 수 있을지는 몰라도 제어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순간적으로 파고들면서 상대를 간합에서 제어하기에는 불리하다. 칼의 길이를 살려 상대를 치려면 차라리 상단이나 팔상에서 머리를 곧바로 치는 것이 더 낫다. 칼날이 더 길고 막대기 형태의 칼막이를 지닌 롱소드 검술에서 중단을 쓰지 않는다는 사실은 두 검술의 차이가 바로 도구의 차이에서 비롯되었음을 암시한다. 

  그렇기 때문에 중단 싸움은 초보자나 겁쟁이들이 본능적으로 칼을 앞으로 내미는 것과는 다르다. 중단은 필연적으로 근거리 싸움이 되며 저돌적이어야 작동이 된다. 시작은 원거리, 일족일도에서 싸우더라도 반드시 스떼미를 하면서 근접해야 한다. 몸을 스트롱으로 간주하고 상대에게 던져넣되 그 방향을 일본도를 든 상태에서 가장 안전한 일직선으로 쏘아넣어버리는 것이다. 이것이 성립되기 위해서는 그러므로 저돌적이면서도 담대한 마음이 필요하다. 중단을 방어적으로 쓰는 사람은 손목을 당하기 쉽다. 그러나 이처럼 공격적으로 몸째로 때려박는 중단을 사용하는 사람은 고단자로서 이런 사람에게 접근을 허용하게 되면 유술에 당하거나 아니면 칼날에 썰리거나 둘 중 하나가 되는 것이다.

  결국 (본인에게 익숙한)독일검술의 개념으로 설명하자면 압셋젠(밀어내기), 버셋젠(가로막기)의 원리를 적용시키되 몸을 도검의 스트롱으로 간주하고 몸 자체를 상대의 공격간격 안으로 밀어넣는 것이다. 강함으로 약함을 제어하고 궤도에서 상대의 공격을 빗겨내게 만든다는 큰 방어의 원칙은 독일검술과 같지만 그것을 서로 다른 몸, 그리고 도구으로 어떻게 풀어내느냐 하는 방법론의 차이인 것이다. 

  그러므로 본인은 에도시대 중반 즈음에 이러한 중단 위주의 일본검술이 완성되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왜냐하면 에도시대에 들어 카타나의 길이가 제한이 걸리고 짧아지는 경향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전국말-에도초의 인물인 히키타 분고로의 목록에 등장하는 그림들은 중단이 다른 자세들과 고르게 등장하고 있다는 점 역시 이러한 심증을 뒷받침하는 바이다. 



설명을 위한 초간단한 그림

무기 숙련의 단계

이 기준은 원래 TRPG의 캐릭터 메이킹 등에서 사용할 수 있는 합리적인 레벨 시스템을 위해 만들어본 것입니다. 그러나 이 기준이 현실에서도 얼마든지 적용될 수 있음을 깨달았고 이에 몇 가지를 덧붙여 현실에서도 무술가의 숙련도를 평가할 수 있게끔 만들었습니다. 다만 이것은 근접 무기를 다루는 무술에 해당되는 것으로 순수 격투기의 경우는 해당되지 않는 부분이 많습니다.
 

레벨1 (문외한)
무기나 그것을 다루는 법에 대해 어떠한 지식이나 관심도 존재하지 않으며 경험 역시 전무함. 

전투능력: 만일 무기를 들고 싸우게 된다면 겁에 질린 채 아무 것도 하지 못하거나 감정과 본능에 맡겨 아무렇게나 휘둘러대는 정도에 그친다. 싸움을 결정짓는 요소들은 보통 누가 더 덩치가 큰가, 누가 더 용감한가 정도의 문제. 같은 레벨의 상대라고 하더라도 쉽게 상대하지 못하며 무리를 지어 습격하거나 상대가 지극히 불리한 상황일 때에야 용기를 얻어 공격할 것이다.

해당 캐릭터: 문명 사회에서 살아가는 대부분의 현대인들. 전근대 사회의 여성. 

비고: 오늘날 대부분 무술가들은 이 단계에서 시작했다. 처음부터 마스터로 태어나는 사람은 없다.

레벨2 (애호가)
본격적으로 무기를 다루는 법을 배우지 못했으나 어느 정도 관심은 갖고 있으며 여력이 있다면 실제로 무기를 소유함.

전투능력: 사실상 제대로 배운 것은 없으나 무기 자체에 보다 더 익숙하고 자주 사용해 보기에 단지 쥐고 있을 때만큼은 그럴듯하다. 그러나 실제로 싸움이 벌어지는 순간 일반인과 다를 바가 거의 없다. 주워들은 것은 몇 가지 있기 때문에 자세를 잡는다거나 특정 기술을 쓴다거나 해서 우위를 점할 수도 있지만 딱 거기까지. 

해당 캐릭터: 전근대 사회의 대부분의 남성들, 문화권에 따라 여성과 성직자 등도 해당함. 현대 사회의 일부 매니아 계층. 

비고: 이 단계에서 배운 지식들은 보통 실제로 입문했을 때에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레벨3 (독학자)
체계적으로 배운 바는 없으나 실제 수련가들의 훈련과정을 어깨너머로 훔쳐보거나 견문하면서 독학하는 단계.

전투능력: 눈썰미가 좋은 사람의 경우 쉽게 다음 단계로 발전할 수 있으며 싸움이 벌어진다고 하더라도 이 단계부터 무술을 모르는 일반인들과 어느 정도 차이가 나기 시작한다. 싹수가 보이는 사람은 이 단계부터 괄목할 만한 실력을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수박 겉핧기로 배운지라 중요한 부분을 놓치는 경우가 많다.

해당 캐릭터: 전근대사회의 전사집단의 종자와 가문 구성원, 현대사회의 시청도&독서도 수련자, 

비고: 이 단계에서 딜레당트와 진지한 수련자가 나뉘어진다. 중이병 환자들의 종착지.

레벨4 (입문자)
특정 유파에 입문하여 기초적인 수련코스를 밟아가는 단계

전투능력: 이 단계부터 본격적으로 일반인들과 차이가 나기 시작하지만 대련을 중시하지 않는 유파의 경우 이 단계에서도 여전히 일반인과 다를 바가 없는 경우도 있다. 이 단계에서 싸움의 양상은 두 가지로 나뉜다. 막상 실전에 들어가면 배운 것들을 죄다 무시하고 익숙하거나 본능적인 동작들만 튀어나오는 것, 기계적으로 배운 것을 적용시키려고만 하고 응용이 잘 안되어 이도저도 아닌 상태가 되는 것. 익숙하지 않은 상황에 처하면 쉽게 당황한다.

해당 캐릭터: 문파의 신입생, 전사의 도제.

비고: 3단계에서 만족하지 못하는 이들이 이 단계에 진입했다가 도로 되돌아가기도 한다. 

레벨5 (연습생)
유파에 입문한 뒤 초보 딱지를 막 때고 다양한 기술과 경험을 흡수해나가는 단계.

전투능력: 이 단계에서부터 몸담은 유파의 특색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자신이 다루는 무기에 익숙해지고 기본적인 전투기술도 익혔으며 자세나 동작 등도 안정되어 자신감까지 갖추게 된다. 그러나 숙련된 전사에게는 여전히 햇병아리에 가깝고 심지어 일반인에게조차 방심했다간 당할 수도 있다. 슬럼프에 쉽게 빠지게 되는 경우가 많다.

해당 캐릭터: 생활취미로 수련하는 사람, 경험이 부족한 젊은 전사

비고: 운전으로 치자면 1년차. 그만큼 사고도 많이 내고 근거 없는 자신감도 심하다.

레벨6 (싸움꾼)
번외레벨. 체계적인 수련은 받지 않았으나 나름의 실전경험으로 어떻게 싸워야 할 지 아는 자. 

전투능력: 기술, 이론에서는 오히려 초보자만도 못하지만 막쌍 싸워보면 상당히 잘 싸운다. 대체로 깡이 쎄고 자신감도 넘쳐 정통파들을 무시하는 경향이 강하다. 잘 하는 것 한 가지에 특화되어 있거나 여러가지 잔기술에 능통함. 그러나 이 단계에 속하는 사람들 사이의 편차는 상당해서 5단계의 수련자에게도 고전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웬만한 숙련가를 상대로도 여유롭게 싸우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결국 밑천이 뻔한지라 쉽게 바닥이 드러나며 일단 패턴만 간파되면 매우 상대하기 쉬워지는 타입. 변칙에 의지하나 그 변칙으로 망하게 된다. 

해당 캐릭터: 전근대 사회의 용병, 떠돌이 전사, 건달. 현대사회에서 이러한 타입은 특수한 사례에 해당함.

비고: 레벨 2나 3에서 삽질만 계속하다가 느닷없이 이 단계로 점프하는 경우가 있다. 혹은 4단계나 5단계 수련자가 흑화해서는 이쪽으로 빠져버리기도 한다. 긍정적으로 보자면 자기만의 길을 개척했다고 볼 수도 있지만 이론적인 부분이 잘 정립되지 않았기에 자신은 잘 싸우더라도 남을 잘 가르치지 못하며 제자를 높은 단계로 끌어올리지 못하게 된다. 간혹 천재적인 수준의 소질을 가진 자들이 별 교육을 받지 않고 이 단계에 오를 수도 있지만 이런 사람들이 새로운 유파를 만들어내려면 반드시 조력자와 운이 따라줘야 한다.  

레벨7 (숙련가)
기술적인 부분에서 숙달하고 경험도 어느 정도 쌓인 단계. 

전투능력: 적어도 어딜 가서 누구랑 붙든 일방적으로 지지는 않는다. 일반인을 상대로는 서너 명 정도라도 우습게 상대하고 기초적인 훈련을 받은 상대라도 문제 없이 요리할 수 있을 정도로 상당한 수준을 자랑하지만 기술적으로 안 좋은 버릇이 있다거나 경험이 부족하다거나 하는 식으로 꼭 어딘가 부족한 부분이 있다. 단점보단 장점이 많기에 부각되지는 않지만 여전히 그 단점 때문에 질 가능성을 안고 있다. 

해당 캐릭터: 전문 전사, 직업 무술가, 무술 고단자. 

비고: 이 정도만 오더라도 충분히 사범 소리를 들으면서 살 수 있지만 현대사회에서는 아예 작정하고 전업으로 삼지 않는 이상 이 단계까지 오기가 쉽지 않다.  

레벨8 (이론가)
번외레벨. 전투능력은 다소 딸리지만 이론을 정립하거나 타인을 가르치는 데에는 탁월한 재능을 자랑한다. 

전투능력: 무술에서의 이론은 결국 실제 싸움에서의 검증을 거칠 수밖에 없기에 뛰어난 이론가로 불리는 이들의 실력 역시 무시할 수가 없다. 이들의 이론은 풍부한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기에 신체능력이 떨어지더라도 감과 경험으로 보완한다. 바로 이 점이 그들을 입만 살아 떠드는 호사가들과 구분시켜준다. 그러나 결국은 어떻게 하면 잘 싸울 수 있는가를 알고 있고 그것을 다른 이들에게 쉽게 가르쳐 줄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이들의 진정한 가치이다. 

해당 캐릭터: 은퇴한 전사, 노쇠한 무술사범. 학구적인 전업 무술가

레벨9 (전문가)
기술, 이론, 경험 모두에서 최고의 단계까지 수련한 자. 정점.

전투능력: 이 단계에 오르게 된다면 사실상 일 대 일 싸움에서 그를 이기기란 매우 힘들다. 그는 자신의 기술 자체만으로도 가공할 만한 전사이지만 훌륭한 이론가이자 모든 잔재주를 꿰고 있는 싸움꾼이기도 하다. 그는 다수의 훈련된 적을 상대로도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싸움을 이끌어나간다. 무기는 이미 그의 수족이나 다름없으며 자신에게 익숙하지 않은 다른 종류의 무기를 들더라도 그 특성을 잘 활용할 줄 안다. 자신이 겪어보지 못한 방식으로 싸우는 자를 만나더라도 쉽게 밀리지 않고 본능과 경험을 총동원해서 결국 승리를 이끌어낸다.

해당 캐릭터: 유파의 개조, 무술가 집단의 마스터, 노련한 전사.

비고: 다행히 오늘날에 이런 사람들을 적으로 만날 확률은 적다. 그러나 만일 이런 사람들과 붙게 되었을 때엔 상대를 과감히 칭찬하자. (from 자기방어술)

부록


지금까지의 설명을 그림을 통해 시각화하였다. 구체적인 통계수치에 근거한 것이 아니기에 어디까지나 개념도로 이해해 주었으면 한다. 낮은 단계에서는 기술보다는 체격이나 심리적 요소들이 더 중요하기 때문에 편차가 상당히 크다. 1단계(빨강)에 대항하는 사람이라도 2단계(주황), 3단계(노랑)의 사람을 이길 수 있다. 반면 경험과 기술이 축적될 수록 이러한 편차는 줄어들게 된다. 마찬가지로 싸움꾼(회색)은 제대로 배우지 못한 초보자에게 강한 자들이 많지만 이들은 반대로 실력이 높은 사람에게는 또 대책없이 약해진다. 정말 고단자들을 상대로도 잘 싸우는 타고난 싸움꾼은 역시 드물다. 도표에서는 이론가(보라색)의 수준을 상당히 높게 잡아놨지만 실제로는 숙련가(남색)의 하위레벨에 속하는 경우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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